NEO PRODUCT 선언문
NEO PRODUCT Manifesto
1. 네오 프로덕트는 사용자의 정신(관점의 변화의 스위치)에 유용하게 한다.
2. 네오 프로덕트는 모든 것을 잘라내고 한 가지에 집중하게 한다.
3. 네오 프로덕트는 미적이어야 한다.
4. 네오 프로덕트는 목적이 명확한 장치(*apparatus)여야 한다.
그래야 그 특성을 드러낸다.
5. 네오 프로덕트는 오래 사용되는 장치(*apparatus)여야 한다.
6. 네오 프로덕트는 여러 관계에 의해, 여러 의견에 의해 계속 수정되어야 한다.
7. 네오 프로덕트는 대상을 보고 나를 반사시켜야 한다.
네오 프로덕트 선언 그리고 그 첫번째 시리즈
“무심한귀를 위한 애피타이저 A부터 C까지” 대해서
네오 프로덕트 선언
가속화되는 기술의 발전은 삶을 편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문화, 사유하는 방식, 그리고 사회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미술을 소비하는 방식, 그리고 감각하고 체화하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로 변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존에 믿고 있던 ‘실제’라는 것을 의심하고, 그것들을 다시 읽어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는 이런 생각들로 시작되었다.
작가는 평소에 무언가를 수행하고 전달하기 위한 장치를 통해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는 ‘트리거’라는 형식을 주의 깊게 살펴봐왔다. 이런 관심은 작가의 일상에서도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이되었다. 그러던 중 미술관이 아니라 좀 더 ‘사적 몰입’이 가능한 실내 공간에 장치할 수 있는 대상을 떠올렸고, 가구와 조명 등 실내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사물들에 관심을 가지며 ‘프로덕트’라는 형식에 주목하게 됐다.
그간 프로덕트의 목적은 생활에서 실질적인 효율성을 증대하고 무언가를 편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오랜 시간 집안에 두고 사용함에 따라 그 기능적 측면만큼이나 점차 심미적 측면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프로덕트는 그것이 놓인 공간에 모나지 않게 어울리면서도 때로는 강한 존재감을 지닐 것을, 또 계속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 형태로 만들어질 것을 요구받아 왔다. 때로는 본래의 기능보다 그 예술적 형태의 지나치게 집착하는 프로덕트도 생산되곤 한다.
여기서 작가는 ‘네오 프로덕트’(NEO product)라는 새로운 프로덕트 형식을 제안하려 한다. 프로덕트의 형식을 새롭게 재편하고, 시각과 청각을, 미술과 소리를 소비하고 감상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는 네오 프로덕트는 장기 프로젝트 안에서 여러 시리즈로 소개된다. 네오 프로덕트는 그 무엇보다 ‘사용자의 정신(관점의 변화의 스위치)에 유용하게 하는 것’, 그리고 ‘대상을 보고 나를 반사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네오 프로덕트’는 프로덕트를 효율적, 기계적 기능에 고착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체로서의 기능을 지닌 프로덕트를 새로이 선언하고 정의한다. 프로덕트의 개념을 다시 인식하게 만드는 새로운 가치와 지점을 제시하기 위한 그 시작점에서, 일곱 개의 선언문을 네오 프로덕트의 프로토타입과 함께 발표하려 한다.
“무심한귀를 위한 애피타이저 A부터 Z까지”
우리는 기술매체를 기반으로 한 SNS, 유튜브, 인터넷 등 수많은 통로로 세상의 정보를 얻는다. 그것들은 새로운 즐거움을 주지만, 한편 수많은 정보를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피로감을 안겨준다. 어떤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사유한 적은 언제였는가?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정보로 스스로를 빠르게 업데이트하지만, 자신이 흐름을 ‘읽어내는’ 해상력은 점점 떨어지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시각 중심의 매체로 세상을 읽고 이해하려는 흐름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 직접적이고 딜레이 없이 내게 전달되는 ‘청각을 통한 관찰’로 세상을 읽어본 적이 있나?
2018년 개인전 <익숙함이* 쌓이고* 녹아내리는 - 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에서 작가는 강한 사운드 트리거와 기민한 듣기를 제안하는 공간, 물리적 스코어 구성 등을 통해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읽어내게 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관람자들을 관찰하며 우리가 얼마나 소리 환경에 무심한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수많은 노이즈와 엄청난 양의 소리 레이어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 머무는 이들이 전시장에 진입했을 때 청각보다는 시각적 강렬함을 먼저 찾는 것은 당연한 듯하다. 작가는 관람자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이를 트리거로 사유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관람자가 무언가를 정확히 지각하지 않으면, 새로운 읽기를 찾으면서도 결국 익숙한 방식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에 작가는 ‘네오 프로덕트’의 첫 작업으로 잠시 퇴화되고 있던 소리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무언가를 인지하는 입맛을 돋워줄 수 있는 ‘무심한 귀를 위한 애피타이저’를 준비했다. ‘무심한 귀를 위한 애피타이저’ 시리즈는 청각에 집중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나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공간에서 감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무심한 귀를 위한 애피타이저’는 A부터 Z까지 이어지며, 이번 라인업은 A, B, C를 소개한다.
by hoonidakim
사유와 관찰을 위한 사물
—《무심한 귀를 위한 애피타이저 A부터 C: 네오 프로덕트 선언》에 부쳐
1.
테이블 같은 가구부터 가전제품,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프로덕트’ 들은 누군가의 사적 공간에 도착하기 전까지 수많은 질문 세례를 받는다. 견고하게 만들어졌는가. 공간과 잘 어울리는가. 편리한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가. 성능은 탁월한가. 이런 질문을 영원히 나열해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뒤따를 모든 질문을 차치하고, 사용자가 가장 근본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 물건이 필요한가 ?
2.
후니다 킴의 전시 《무심한 귀를 위한 애피타이저 A 부터 C: 네오 프로덕트 선언》에 놓인 사물들도 동일한 질문과 마주한다. 작가가 ‘네오 프로덕트’ 라는 명명하에 선보이는 〈무심한 귀를 위한 애피타이저 A 부터 C〉는 견고한 만듦새와 어느 공간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 깔끔한 디자인, 편리함이라는 부분을 모두 가볍게 충족한다. 그러나 이 네오 프로덕트의 필요와 성능은 보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물건을 손에 넣고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이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탁월한 성능을 지녔는지 우리는 아마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 네오 프로덕트는 직접 경험해본 후에야 그것이 필요했음을 체감케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소개하는 세 개의 네오 프로덕트는 우리의 ‘청감각’을 위한 것이다 .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빽빽한 시청각 환경에 노출되어 수많은 소리를 듣느라 피로가 누적되고, 가끔은 내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뎌진 우리의 청감각을 위한 것이다. 후니다 킴은 이렇게 질문한다. “시각 중심 매체로 세상을 읽고 이해하려는 흐름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 직접적이고 딜레이 없이 내게 전달되는 ‘청각을 통한 관찰’로 세상을 읽어본 적이 있나?” 답하자면, 근래에 나는 청각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기는커녕, 세상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거의 없다.
이제껏 프로덕트는 효율성과 편리함을 추구해왔고 날로 정교해지는 디자인은 그 심미성을 증가시켜왔다. 후니다 킴은 여기에 ‘사유체’ 로서의 기능을 더한다. 네오 프로덕트는 그것이 자연스레 이끌어내는 행위를 다른 방식으로 관찰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를, 자신의 감각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이 프로덕트를 ‘네오’라 별칭할 수 있게 만드는 지점은 여기서 비롯된다.
3.
세 개의 사물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네오 프로덕트는 〈사운드 샤워〉다. 손잡이 부분에 달린 전원을 켜고 물을 끼얹듯 이 ‘제품’을 머리 위에 대면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 물소리를 듣는 시간은 온수로 몸을 씻는 것처럼 따뜻하고 촉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 과정은 우리가 샤워라는 개인적인 행위를 하는 동안 신체뿐만 아니라 생각도 씻어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장치를 다시 거치대에 내려놓는 순간 물소리는 소거되고, 그와 함께 뇌리를 맴돌던 생각도 내 몸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앙에 놓인 두 번째 네오 프로덕트는 〈사운드 테이블〉이다. 테이블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한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가구 중 하나인 테이블에 엎드려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주택가의 사운드 스케이프다. 집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각자에게 몹시 친숙하겠지만, 우리는 그만큼 그 소리를 주의 깊게 청취하지 않는다. 손과 머리를 비운 채 테이블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경험은 꼭 어떤 미니어처를 들여다보며 세계를 관망하는 일과 닮았다.
녹색 커튼을 열면 만나게 되는 세 번째 네오 프로덕트는 〈사운드 미러〉다. 거울은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물체의 형상을 비추어보는 물건’으로 정의된다. 이 제품은 형상을 비추는 대신 우리에게 따뜻한 빛과 소리를 쪼인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를 향한 빛과 소리에 몰입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감각을 천천히 관찰한다. 〈사운드 미러〉의 방에서 시간을 보낸 뒤 밖으로 다시 나갔을 때의 감각은 전과 같지 않다.
이곳에서 자유롭게 사용이 허락된 네오 프로덕트들, 혹은 언젠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는 이 제품들은 우리가 기성 프로덕트를 사용할 때 간과하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거울과 테이블, 샤워기 외에도 일상에 녹아있던 장치들이 어떤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를 곰곰이 짚어본다. 문득 눈앞에 놓인 모든 물건이 생경해 보인다.
4.
‘네오 프로덕트’는 새로운 프로덕트의 형식을 실험하는 일종의 프로토타입이다. 여기서 소개 된 세 가지 제품은 물론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지만, 전시장에서의 짧은 시간만으로 작업의 지향점을 단번에 체화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작가는 이 제품/작품 감상 이후의 청감각이 보다 선연해지기를 기대하며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 했던 것, 너무나 익숙해서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 인식의 네거티브 영역에 있던 것들을 꺼내온다. 이 일상적이고도 사적인 행위들이 선사하는 감각을 더욱 잘 되돌아보기 위해, 네오 프로덕트는 ‘사용자’와 차분히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린다.
5.
꽤 오랫동안 머리를 대고 엎드려있던 그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켜 커튼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아이패드가 놓인 각도를 인지한다. 소곤거리는 관객들의 말소리와 냉난방기의 미세한 소음을 감지하며, 이 모든 감각의 중앙에 놓인 나 자신을 인지한다. 우리는 이곳을 나가면 가장 먼저 무슨 소리를, 어떻게 듣게 될 것인가?
by 신예슬